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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작업/설계

[Ramblings] 건축 설계비에 대한 단상 - 1

hoooooooon 2025. 2. 24. 23:59

요즘 개인적으로 많이 바쁘다 보니 글감을 따로 찾기보다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냥 편하게 써 내려가게 된다. 최근에 건축설계 자동화에 대해 써봤는데, 오늘은 그와 연결된 또 다른 주제, '건축설계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사실 두 가지가 전혀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다.

 

건축설계 일을 10년 넘게 하면서, 주변 건축사들과 만날 때마다 꼭 빠지지 않는 대화 주제가 있다. 바로 "설계비가 너무 낮고, 지난 수십 년간 별로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많은 건축사사무소들의 공통적인 고민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설계비가 오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건축 설계의 가치가 발주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발주자들이 설계라는 걸 "그냥 도면만 그려주는 간단한 작업"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무료 가설계나 저가수주가 일반화되었고, 이게 다시 건축 설계비의 하향 평준화를 만들어버렸다.

 

무료 가설계는 참 어렵고 애매한 문제다. 나는 실무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런 분위기와 업계 상황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처럼 무료로 가설계를 해줘야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이게 과연 옳은 일인지에 대해서는 늘 의문이었다. 발주자들은 무료로 제공받던 가설계를 본 설계와 비교하면서 "왜 이렇게 비싸냐?"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걸 누굴 탓할 수도 없는 게, 우리 건축사들이 이런 관행을 만들어낸 거니까 말이다.

 

설계비가 오르지 않으면 결국 건축 품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설계비가 낮으니 여러 프로젝트를 받아서 빠르게 처리해야 하고, 자연스레 설계 품질보다는 속도가 우선이 된다. 직원들에게 충분한 급여를 주기도 어렵고, 그러다 보면 좋은 인력들이 업계를 떠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도 주변에서 그런 경우를 많이 봤다.

 

또 하나의 문제는 설계비가 정체되면서 자동화나 BIM 같은 기술 투자도 어렵다는 점이다. 건축설계 자동화나 최신 기술을 도입하려고 해도 초기 비용이 들어가는데, 이미 빠듯한 상황에서 기술 투자는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설계비가 현실화된다면 기술 도입이나 자동화 같은 혁신이 훨씬 수월하게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최근 채용시장을 보면, 여전히 많은 건축사사무소가 SketchUp을 주력으로 쓰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SketchUp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새로운 기술이나 BIM 도입에 관심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설계는 점점 더 디지털과 자동화 쪽으로 갈 텐데, 이런 사무소들이 과연 언제까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싶다.

 

결국 설계비의 정상화와 건축설계 자동화의 발전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설계비가 오르면 자동화 기술도 발전할 여력이 생기고, 자동화를 통해 더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작업이 가능해지면서 건축 시장 자체도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 특별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우리 건축인들이 다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본다.

 

다음 2편에서는 일반 직장의 인건비와 비교해 보면서, 건축설계의 현실적인 인건비 수준에 대해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이야기해보려 한다.